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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있어 즐거울 것이고, 첫번째 오천고지라 설레고, 날이 좋아 기분좋고...
롯지 주인의 딸이 말하길... 렌죠라 패스까지는 자기 걸음으로 4시간 정도 걸리고, 저 멀리 에베레스트 산군이 한 눈에 들어와 어쩌면 촐라보다 더 환상적일 수 있을 것이고, 길은 쉬우며, 지금 시기엔 눈도 없고 해서 딱 좋고...
단지 운이 따라야 한다고... 날이 좋지 않으면... 말짱 꽝이니까..ㅋㅋㅋ
잠을 설쳤다..
늦게 잔 것도 문제고, 이리저리 뒤척인 것도.. 그렇고.. 긴장한 것도... 아무튼 설쳐버리고 말았다...
짐이 많기에
5시경 잠에서 깨어 사이트를 정리하고 배낭에 하나둘 패킹하고 필요할 것 같은 품목들은 빼기쉬운 포켓에 넣는다..
새벽 공긴 차다..
커피 한잔에 입김 한 번...슈우~~~~..
먼저 떠난다..
언제나 내 걸음은 비스타리 비스타리..
옆집 커플은 7시30분 출발이랬다..
오르면서 보니 어제 포기한 낭파라방향의 일출.. 너무 좋았다.. 갈 껄 그랬나...흠..
길은 좋다..
새벽의 찬 공기를 뚫고 어둠을 뚫고 전진...
날도 좋다..
사인보드가 보일때까지 전진..
하~~ 배가 아프다.. 어젯밤 너무 많이 먹었나...
숨이 차다..
어깨도 아파온다...4300에서 1000이상을 올려야 하는 길이다..
속도가 늦어진다..
벌써 네시간 이상을 걸었건만 길은 막막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해는 높이로 높이로 떠올라 간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하는 맘에
길을 재촉해 보지만 백미터 걷고 십분 쉬고를 반복하는데..
11시가 되자 브라질부부와 포터가 날 따라잡는다..
서로에게 격려를 하며 어제 약속한 '초오유bc에서 캠핑'을 외쳐본다..
그들의 걸음은 상쾌하다..
다시 힘을 내어 이를 악물어 본다.. 이깟 두통 쯤이야...조금만 더 가면... 정상인데...
--포터에게 물어보니 2시간이면 오케이...
알고보니 그에겐 두시간이지만 나에겐 불가능조차 거부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어..어라... 점점 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일기가 사정없이 바뀌어 버린다.. 저러면 렌죠라에서의 꿈꿔왔던 풍광은... 초초해진다..
갈수록 지쳐가고
커플은 이미 날 앞선지 오래다..
내가 왜 이러지... 너무 힘이 든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단편적이게 된다... 저기가 정상인데... 저기가...
그들은 이미 구부능선을 넘어가는데...
그들은 벌써 그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배낭을 내리고 숨을 할딱 거리다 물을 마시고 쵸코바를 먹어보고 잠시 휴식을 취해 보지만..
터질듯 아파오는 머리...
잘못하면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여기선 혼자다...
자칫하면 정신을 놓을 것 같다...
선택을 해야 한다.. 저기...저기가...렌죠란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
주저 앉고 싶다..
그들은 이미 그곳을 지났겠지..
이러다 자칫 이러다.. 네팔 뉘우스에 나오지나 않을런지... 여러가지 생각들이 지나간다...
일단,
내려가자...
거진 오천에서 뒤돌아 섰다.. 이를 악물고 내려간다..
4500에서...
평지.. 배낭을 벗고 돗자리를 깔고 다운파카를 꺼내 입고 아스피린을 찾는다...너무 힘들다.. 그저 누워서 배낭에 손을 넣고 휘젓는다..
가까스로 찾아 한알 먹고 엎드린다..
아마 여기가 캠핑사이트겠지..
여기저기 군데군데 팩 박힌 자리가 많다.. 두통이 가시면 여기서 텐트치고 내일 다시시작하자...
이렇게 맘 먹고 누워 있지만.... 두통은 더해 갈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구름은 이제 산군 전체를 뒤덮어 (3시30분이었지만 )사방이 어두워진다..
기운은 없다..
이제 어떡한다냐..
욕심은...버리자...그래...그래...물이랑 복대만 챙기고... 배낭은 바위틈에 쳐박아 두고 하산... 하산...
고도를 낮춰야 한다..
고도를 낮춰야 한다..
2시간 이상을 내려온다.. 마을이 시야에 들어 와도 여전히 힘들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찍었다
입은 계속 타들어가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두통과 정신적 혼란..
여기서 잘못되면 어쩌나.. 통신이 없어 구급헬기도 못 부를텐데..
운명..
한번 웃는다..
두번 웃는다..
세번 웃는다..
롯지의 문이 잠겨 있다.. 계속 두드린다.. 절망을 느끼기 전 눈을 비비며 딸이 문을 연다.
다이닝 룸에 들어서자
그대로 누워
버린다..